차원의 문 룩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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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감옥에서 도망쳐 나온 엘람은 궁전에서 행했던 점괘의 진위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마계인들이 목격되었다는 소문의 근원지로 추정되는 곳을 찾으러 다녔다. 흉포한 몬스터들로부터의 위험을 무릅쓰고 흰독수리 산맥 북쪽의 산악지대 깊은 곳까지 홀로 들어갔던 엘람은 어느 골짜기에서 격렬한 전투의 흔적을 발견했다. 그는 곧 이 장소가 하란으로 넘어온 마족 선발대의 주둔지였으며 이곳에서 마족들은 호전적인 트롤 군단에게 습격당해 전투 끝에 전멸당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이것은 어딘가의 녹스가 이미 마계로부터 열려버렸다는 뜻이기도 했다. 천년 동안 안전했던 대륙이 다시 마계인들의 침략에 노출되었다는 것만으로도 큰일이었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불길한 기분이 든 엘람은 마족의 또 다른 흔적을 찾아 주둔지 주변 지역을 샅샅이 수색했다. 그리고 마침내 멀지 않은 곳에서 마족이 만든 독특한 형태의 제단을 발견했는데 제단은 큰 거울처럼 생긴 중앙의 물체를 향해 사방에서 크리스탈이 힘을 주입하는 형태였다. 움직이는 생명체라면 무엇이든 잡아먹으려고만 하는 트롤들은 이 제단을 파괴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 같았다. 제단의 존재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 엘람은 이후로 그곳에 머물며 밤낮으로 제단을 조사하였고 마침내 그것이 압그룬트와 연결된 차원의 문, 룩소르(Luxor)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엘람이 우려했던 대로 마족들은 아르케의 정기가 균형을 잃은 틈을 타 가장 정기가 엷어진 지점을 찾아냈고 그곳에 제단을 설치하여 정말 마계의 신 이그니스를 부활시키려 했던 것이었다. 만약 이그니스가 풀려난다면 클레이언의 미래는 멸망밖에 없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엘람은 룩소르를 무력화시키고자 여러 방법을 써보았지만 허사였다. 마력이 깃든 룩소르를 원천적으로 막아낼 방법은 알 수 없었고 그렇다고 대륙 세계의 힘으로 파괴시킬 수 있는 물건도 아니었다. 그러나 마계인들의 주문을 해독해낸 엘람은 이 제단의 능력을 응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부활의 대상을 바꾸면 오히려 룩소르의 힘을 통해 이그니스에 비해 훨씬 수월하게 압그룬트에 잠들었던 고대영웅을 소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다. 물론 룩소르를 함부로 사용했다가는 왕국에 더 큰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지금 백성들을 학살하는 차투랑가를 막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한 엘람은 결국 차원문의 소환 의식을 실행했다.
룩소르를 통해 압그룬트를 들여다본 엘람은 마침내 하르마게돈 때 마계인들을 도륙한 전설적인 고대영웅 이슈타르(Ishtar)의 영혼과 접촉할 수 있었다. 엘람은 이슈타르를 설득하여 그를 지상세계로 불러오려 했지만 이슈타르는 이미 육신조차 없었기에 그의 영혼을 담을 그릇이 필요했다. 이에 엘람은 자기자신을 그릇으로 빌려주기로 결심하고 이슈타르의 영혼을 받아 그의 모습과 능력을 엘람의 육신으로 재현해냄으로써 마침내 고대영웅을 현세에 소환하는 것에 성공하였다.
이슈타르와 한 몸이 된 엘람은 왕국으로 돌아가 아스완이 이끄는 시민군에 합류했다. 이슈타르의 초인적인 돌격과 비상한 전술 아래 그동안 교착상태에 빠졌던 전황은 시민군에게 유리하게 기울기 시작했다. 상황이 변하자 왕국을 지키던 병사들은 점차 하나둘씩 도망치기 시작하였고, 차투랑가의 최정예라 할 수 있는 친위대까지 격파되자 홀로 고립된 차투랑가는 어쩔 수 없이 아스완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차투랑가를 왕좌에서 끌어내린 아스완은 그를 외딴 섬에 유배시켰고, 그동안 왕에게 아첨하여 사리사욕을 채우던 간신들도 전부 처형했다. 백성들은 이 참에 만악의 원흉이었던 후궁 메데스도 처형하길 원했지만 그녀의 모습은 왕국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엘람은 이슈타르로 변신해 차투랑가를 무찌르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이슈타르가 원래 가지고 있었던 괴물 같은 능력이 완벽히 발휘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영혼 상태로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심연속에 갇혀 있었기에 고대영웅의 힘이 단지 하나의 그릇을 통해서는 온전히 발현되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에 엘람은 룩소르로 돌아가 이슈타르를 다시 심연으로 돌려보낸 뒤, 고대영웅을 완벽히 불러올 방법을 찾아 골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늘 그렇듯 엘람은 이번에도 엉뚱하면서도 기발한 해결책을 찾아냈는데 하나의 그릇이 어렵다면 여러 개의 그릇을 사용하자는 것이었다. 고대영웅은 이미 영혼의 형태였기 때문에 그 능력의 분리가 가능했고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고대영웅의 영혼을 나눠 담을 이 시대의 새로운 영웅들을 찾아내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