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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현자 엘람

왕국에는 엘람(Elam)이라는 대현자가 있었다. 그는 어릴 적부터 마계에 대해 강한 호기심을 느끼고 마계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그렇다면 녹스는 정말 마계와 통하는 것인지를 면밀히 밝혀 내기 위해 고대의 요새와 녹스들을 찾아 대륙 곳곳을 돌아다니며 조사해온 학자였다. 하지만 그에게 ‘대현자’라는 호칭이 붙은 건 다소 엉뚱한 업적 때문이었는데 그가 밝혀낸 연구에 따르면 마계라는 것은 단지 ‘하란의 흉터’를 통해 연결된 하나의 차원일 뿐, ‘하란의 흉터’가 만들어낸 수많은 지각의 틈인 ‘녹스’들은 이미 마계 외에도 수많은 차원과 각각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각 차원 너머의 공간은 하란 대륙처럼 실존하는 세계였으며 정체는 알 수 없지만 차원 저편에는 클레이언 같은 인격체까지 존재한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과거에 보였던 환영이나 환청도 유령을 목격했던 것이 아니라 때때로 벌어지는 지각운동으로 인해 차원통로가 간헐적으로 비틀어졌을 때, 이세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의 일부가 보여지는 현상이었던 것이다. 엘람은 특정한 조건만 충족된다면 이 연결을 통해 이세계와 물리적인 교류까지도 가능할 것이라고 결론을 지어 왕국에 보고했고, 이 연구성과는 클레이언들이 그동안 갖고 있던 세계관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이때부터 엘람은 대현자로 불리게 되었다.
왕국이 이 발견을 두고 어떻게 조치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는 사이, 몇몇 선구적인 성향의 클레이언들은 적극적으로 이세계와의 접촉을 시도했고 상호 신뢰를 쌓은 몇몇 세계와는 실제로 재화도 거래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세상과의 교류가 정말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리고 이 교류를 이용해 큰 이익을 보는 사람들도 생겨나자, 이세계들과의 연결지점을 독점하려 상인, 무사, 학자 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녹스들 위에 세워진 채로 방치되었던 요새를 강제로 점거하거나, 새로 발견된 녹스에 요새를 축조하기도 했으며, 때로는 다른 집단이 소유한 요새를 차지하기 위해 다툼을 벌이는 등 요새를 둘러싼 갈등이 끊임없이 벌어졌다.
차투랑가 국왕은 이 대현자 엘람을 왕국으로 불러들였다. 대륙에서 연이어 일어나는 자연재해로 마음이 불안해져 이 현상들이 혹시 어떤 상징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해석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고대 클레이언들의 방식으로 점을 쳐본 엘람이 말하길, 클레이언들은 본디 이그니스의 저주로 인해 이미 오래전에 멸망의 비탈길에 굴러 떨어져 사라졌어야 할 운명이었지만 27인 고대영웅의 희생과 아르케의 정기를 버팀목 삼아 이그니스를 봉인함으로써 지금까지 천여 년간 파멸을 유예시켜 온 상태라고 했다. 하지만 최근 수대에 걸친 국왕들의 폭정 때문에 그동안 대륙을 안정시켜주던 아르케의 정기가 균형을 잃고 요동치면서 종말의 바퀴가 다시 굴러 가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자연재해는 단지 그 현상의 일부일 뿐, 정말 심각한 것은 정기가 약해져 그동안 아르케의 힘으로 잠겨 있었던 마계와의 차원의 통로가 다시 열리고 있다는 것이며, 만약 마계인들이 하란 대륙으로 넘어와 압그룬트에 봉인된 이그니스를 부활시키기라도 한다면 세계의 종말은 아무도 막을 수 없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엘람의 비관적인 해석 때문에 기분이 몹시 불쾌해진 차투랑가는 엘람을 왕국을 저주한 죄로 그 자리에서 죽이려고 했지만, 그는 이미 국왕보다도 명망이 높았기에 대신들의 간곡한 만류로 엘람은 잠시 처형이 미뤄진 채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하지만 감옥의 간수들도 이미 엘람의 편이었고 그는 결국 모두의 권유로 탈옥하여 왕국 밖으로 도망치게 되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