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이 왕국의 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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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영웅들의 희생으로 하르마게돈에서 승리한 아르케는 참전에 대한 감사를 표하기 위해 클레이언의 대표자 한 명을 신전으로 출두하도록 했다. 부족의 지도자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이미 모두 압그룬트에 잠들어버렸으므로 클레이언들은 생존한 사제 중 한 명인 ‘페리파 리케이온(Peripa Lykeion)’을 대표로 세워 홀로 땅끝 절벽 신전으로 보냈다. 아르케는 페리파에게 로열시드(Royal Seed)라는 신비로운 씨앗을 하사하면서 앞으로 클레이언들의 가야할 방향에 대한 신탁을 내려주었다. 신탁을 마친 아르케는 그동안 전쟁으로 입었던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 바다 속으로 들어갔고 깊고 오랜 휴식에 빠졌다.
한편 신전에서 돌아온 페리파는 사람들에게 로열시드를 보여주면서 그가 받은 신탁을 전달했다. 그 내용인 즉, 이 씨앗은 스스로 ‘KING토큰’이라는 열매를 생산해내는 식물로서 모든 클레이언들이 KING토큰을 공통화폐로 이용하면 모든 부족을 하나로 이을 수 있으며, 그렇게 되면 자연의 파괴 없이도 클레이언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클레이언들은 이제 아르케의 의지를 받들어 그동안 서로 반목해왔던 부족들을 하나로 통일해야 할 시기가 왔다는 것에 동의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모든 클레이언 부족이 연합하여 ‘클레이 왕국’의 건국을 선언했고 페리파가 초대 국왕으로 추대되면서 리케이온 왕조가 시작되었다.
페리파를 비롯한 클레이 왕국의 초기 국왕들은 훌륭한 지도력을 발휘하여 황폐화된 대륙을 복구하고 국가를 발전시켜 나갔다. 화전을 금지시키고 농법을 개량하였으며 왕국에서 더 이상 굶는 사람은 없도록 보살피었다. 수렵과 채굴을 제한하면서 이전에 파괴된 자연도 점차 원상태로 회복되어갔다. 왕국의 모든 거래는 물물교환 대신 KING토큰을 이용하도록 했으며 재정정책부터 개인간 환전 거래까지 전부 왕립은행에서 통제했다. 초기의 현명한 왕들은 이 체계를 효율적으로 운영하였고 왕국은 한동안 태평한 세월이 이어졌다.
한 가지 근심거리라면 신들의 전쟁에서 이그니스가 대륙을 강타하며 ‘하란의 흉터’를 만들었을 때 이 여파로 지반 밑으로 균열이 퍼지면서 대륙 표면 전역에 걸쳐 생성된 구멍들, 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땅속 깊이 패인 구멍들, 바로 '녹스(Nox)'의 존재였다. 이 녹스 주변에 거주하던 클레이언들 사이에는 이상한 소문이 돌았는데, 도저히 이 세상의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 환영을 봤다던가 다른 세계로부터의 목소리가 들렸다던가 하는 증언이 지속적으로 보고되는 것이었다.
초기 국왕들은 이것이 행여 마계로부터의 재침공 징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왕국 영지 내에 생성된 녹스들에 수시로 조사단을 파견하고 주요 목격 지역에는 요새를 지어 군대까지 주둔시켰다. 이렇게 침공을 대비한 경계 태세를 갖췄지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마계인의 조짐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고 열심히 구축했던 요새는 점차 애물단지가 되어갔다. 왕국 사령부는 소문에 대해 신들의 전쟁 때 마계인들이 하란 대륙에서 죽은 뒤 아직까지 남아있던 잔류사념이 완전히 소멸되면서 빛과 소리를 내는 현상이라고 판단하고 결국 요새에서 군대를 전부 철수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요새가 텅 비게 되자, 몬스터들의 위협에 시달리던 인근의 클레이언들은 안전한 곳을 찾아 주인 없는 요새 안에 터를 잡기 시작했고 요새는 점차 거주구역으로 사용되게 되었다.
그렇게 천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평화가 오래도록 지속되자 왕국의 의지는 느슨해졌고, 치열했던 건국의 역사도 신화 속에서나 남아있게 되었다. 신도 마계도 고대영웅들의 희생도 이제는 과거에 실존했던 사실이 아닌 아득한 꿈속의 이야기처럼 받아들여졌다.